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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현각스님의 살아있는 금강경

금강경 한글 해석/해설: 20.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by 윤해환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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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금강경: 20

「須菩提, 於意云何? 佛可以具足色身見不?」
「不也,世尊。 如來不應以具足色身見。 何以故, 如來說, 具足色身, 即非具足色身, 是名具足色身。」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可以具足諸相見不?」
「不也,世尊。 如來不應以具足諸相見。 何以故, 如來說, 諸相具足, 即非具足, 是名諸相具足。」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신체적 특징을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여래라고 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신체적 특징을 원만(圓滿)하게 갖추었다고 여래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원만한 신체를 갖춘다는 것은 원만한 신체를 갖춘 것이 아니라고 설하셨으므로 원만한 신체를 갖춘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신체적 특징을 갖추었 다고 여래라고 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신체적 특징을 갖추었다고 여래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신체적 특징을 갖춘다는 것이 신체적 특징을 갖춘 것이 아니라고 설하셨으므로 신체적 특징을 갖춘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20.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 모습과 특성의 초월

제20장입니다. 이 장은 좀 더 얘기를 많이 해도 될 것 같습니다. “형상으로 차별하면 안 된다.” 매우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불교도이건 기독교인이건 이 점은 그 어떤 종교인이나 또는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부처로 만듭니다. 그 말은 다른 것은 부처가 아니게 되는 것이죠. ‘둘’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어떤 곳을 신성한 곳으로 만들고요. 다른 곳은 신성한 곳이 아니게 되는 것이죠. ‘둘’을 만든 것입니다. 진정한 불교의 가르침은 여래입니다. 여래! ‘불이(不二)’, 두 개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 경험, ‘탕~’은 둘이 아닙니다. 그대로 완전합니다. 완벽하게 있는 그대로 완전합니다. 이 순간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이미 완벽한 것, ‘탕~’ 바로 부처입니다. 또는 신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뭐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사실은 실수지만요.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진짜 부처는 완벽한 몸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부처와 같이 생긴 몸이라는 것이 있느냐? 저 뒤에 있는 것처럼?”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를 모든 상을 다 갖춘 존재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부처는, 여래는, 있는 그대로!  여래가 어떤 특별한 모양으로 생겼겠습니까?” ‘이와 같이!’ 나타나는 것이 어떤 특별한 모습으로 정해져 있냐고요? 진짜 부처, 진짜 신, 진짜 영성은 어떤 특정한 모양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장의 가르침입니다.

진짜 부처를 보시고 싶으시면, ‘부처’를 버리십시오. ‘신’도 버리시고, 모두 다 버리세요. 그리고 볼 때 볼뿐, 들을 때 들을 뿐, ‘탕~’ 냄새 맡을 땐 맡을 뿐, 흠~ 맛볼 맛볼 때는 맛볼 뿐, 제 이 장삼이 여기 계신 어떤 분들 보다 더 부처를 잘 이해하고 있네요. 제 장삼은 선풍기 부처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어떤 아이디어도 만들지 않고요. “이것이다, 저건 아니다.”라는 말도 않고요. 바람이 불면 바람 따라 흔들립니다. 잘 보이시죠? 전혀 어렵지 않지요?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부처에 대한 상[아이디어]을 만들거나, 신에 대한 상을 만들거나, 이런 상, 저런 상, 한국 상, 미국 상, 보수 상, 진보 상, 여자 상, 순수한 상, 더러운 상 등 이런 상을 만드는 즉시, 더 이상 여래도 아니고 부처도 아닙니다. 정말 쉽지요? 이 가르침은 ’이런 상을 모두 깨는 굉장히 파격적인 가르침입니다. 진짜 부처를 만나고 싶으시면 아무것도 만들지 말고 부처를 따로 다른 데서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선불교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 부처에 대한 어떠한 상[모양이나 아이디어]은 더 이상 진짜 부처가 아닙니다. 진짜 부처가 꼭 저렇게 생겨야만 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여기에 수많은 부처들이 있는 것입니다. 불교는 정말 특별한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많고 많은 부처는 결국 ‘부처’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수백수천의 불상이 있지요? 한국의 어떤 절에는 100만 불전이라고 하는 법당도 있는데요. 100만 불상의 뜻은 ‘부처’라는 것이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네, 정말 흥미롭지요? 불교에서는 이렇게 하나의 부처로 온 우주에 가득 채웁니다. 학문적으로 말하면, 부처라는 상을 분해시켜 버렸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부처가 저 뒤에 있는 것처럼 생겼다고 생각하셨다면, 착각하신 겁니다. 저건 아이들에게나 필요한 이미지일 뿐입니다.

진짜 부처는 볼 때, 들을 때, 냄새 맡을 때, 맛볼 때, 느낄 때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 바로 부처입니다. ‘이와 같이’ 경험하는 여래입니다.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듣고, 이와 같이 냄새 맡고, 이것이! 부처입니다. 이 진리를 보여드리기 위해서 이 주장자를 사용합니다만, 이것은 단지 이런 경험을 여러분께 보여드리기 위해 잠시 사용하는 막대기일 뿐이지요. 여러분은 보고, 듣고, 냄새 맡는 이런 경험들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 경험들 자체가 바로 부처인지를 느끼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 부처라고 말하면 실수입니다.

그래도 만약 여러분께서 제게 부처에 대해서 물으신다면, ‘탕~’ 오, 저기 있는 새는 벌써 알아듣고, ‘부처님 무서워~’ 하면서 날아가 버렸네요. 재미있죠? 질문이 있으신 분계십니까? 없어요? 좋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다시 표현하자면, ‘색즉시공 공즉시색’입니다. 색은 즉 공하고, 공은 즉 부처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저 뒤에 있는 불상이 유일한 진짜 부처라고 생각하면요, 틀렸습니다. 진리는 이와 같이 ‘여래’입니다. 여러분이 경험하는 있는 그대로의 진리, 바로 이 순간의 경험은 이미 ‘완벽’합니다. 그게 바로 부처입니다. 오, 정말 놀라운 가르침이죠? 자, 다음 장, 21장으로 넘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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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한글 해석/해설: 21.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須菩提, 汝勿謂如來作是念, 『我當有所說法』, 莫作是念。 何以故, 若人言, 如來有所說法, 即為謗佛, 不能解我所說故。 須菩提, 說法者, 無法可說, 是名說法。」 爾時, 慧命須菩提白佛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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