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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현각스님의 살아있는 금강경

금강경 한글 해석/해설: 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Part 2

by 윤해환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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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각스님의 살아있는 금강경 : 6

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 여래의 참모습

須菩提白佛言。 世尊, 頗有衆生, 得聞如是言說章句, 生實信不?
佛告須菩提。 莫作是說。 如來滅後, 後五百歲, 有持戒修福者, 於此章句, 能生信心, 以此爲實。 當知。 是人, 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而種善根, 已於無量千萬佛所種諸善根, 聞是章句, 乃至一念生淨信者。 須菩提, 如來悉知悉見, 是諸衆生得如是無量福德。
何以故, 是諸衆生無復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無法相, 亦無非法相。 何以故, 是諸衆生若心取相, 則爲著我, 人, 衆生, 壽者。 若取法相, 即著我, 人, 衆生, 壽者。 何以故, 若取非法相, 即著我, 人, 衆生, 壽者。 是故不應取法, 不應取非法。 以是義故, 如來常說, 『汝等比丘,知我說法,如筏喩者。』 法尚應捨,何況非法。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내는 중생들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그런 말 하지 말라. 여래가 열반(涅槃)에 든 오백년 뒤에도 계(戒)를 지니고 복덕을 닦는 이는 이러한 말에 신심(信心)을 낼 수 있고 이것을 진실한 말로 여길 것이다. 이 사람은 한 부처님이나 두 부처님, 서너 다섯 부처님께 선근(善根)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부처님 처소에서 여러 가지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잠깐이라도 청정한 믿음을 내는 자임을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여래는 이러한 중생들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복덕 얻음을 다 알고 다 본다.
왜냐하면 이러한 중생들은 다시는 자아가 있다는 관념 (我相), 개아가 있다는 관념, 중생이 있다는 관념, 영혼이 있다는 관념이 없고, 법이라는 관념이 없으며 법이 아니라는 관념도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중생들이 마음에 관념을 가지면 자아·개아·중생· 영혼에 집착하는 것이고, 법이라는 관념을 가지면 자아·개아·중생·영혼에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법이 아니라는 관념을 가져도 자아·개아· 중생·영혼에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에 집착해도 안 되고 법 아닌 것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그러기에 여래는 늘 설했다. 『너희 비구들이여! 나의 설법은 뗏목과 같은 줄 알아라. 법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

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 깊은 믿음

우리가 먹는 사과도 지금 당장 생겨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과정을 통해서 입 안으로 들어오듯이 말입니다. 물론 지금 그 순간 사과의 맛을 보지만 그 인연들이 갑자기 아무렇게나 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아주 오랜 된 인연들이 서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리에게 이런 믿음의 인연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잘 보라고 하신 겁니다. 아주 쉬운 가르침입니다. “이 사람은 한 부처, 두 부처, 세 부처, 네 부처, 다섯 부처에서 선의 뿌리를 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와 선의 뿌리를 심었기에 이 구절을 듣거나 한 생각만으로도 깨끗한 믿음이 생길 것이다.”

저도 우연히 계획하지 않고 금강경을 처음 읽었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제가 금강경 책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읽지는 않았었습니다. 아 또 이름이 너무 좋잖아요. 다이아몬드 경. 잘 나가는 힙합 가수들이 목에 메는 다이아몬드 목걸이처럼요. 모든 사람들이 다 다이아몬드 좋아하죠? “오~ 다이아몬드 경, 꽤 대단하게 들리는 걸….” 가장 비싼 보석인 다이아몬드와 같은 금강경 경전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처음 읽게 되었는데,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어도 깊은 곳에서 뭔가 꿈틀 거렸습니다. 금강경은 그 어떤 다른 경전들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전에 읽었던 그 어떤 책보다도 훨씬 더 깊이 요점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전혀 지능을 요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반(反)지적인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엄청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제 마음이 활짝 열리게 되었는데, 그 때가 금강경과의 만남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베토벤 음악을 들을 때 처럼요.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처음 그 음악을 듣는 사람도 단지 그 리듬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항상 느껴왔던 어떤 강한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베토벤이 유명한 이유는 그가 단지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서가 아닙니다. ~~~따라라 단…. 이런게 아니라, “와~악!”하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아~ 내 운명을 느낀다. 이 음악을 듣기 전에도 운명을 느낀 적이 많거든… 아 음악이 내 마음을 울리는 구나~ 바로 내 얘기네!” 하면서 말이죠. 베토벤은 내 ‘마음의 소리’를 그려낸 것입니다. “와 정말 대단한 천재다. 어떻게 그런 음악을 만들 수 있지?” 숭산스님도 “넌 누구냐?” “오직 모를 뿐이다!” 하시면, 전 “맞아요, 모릅니다.” 했었어요. “오직 모를 뿐” 임을 느낀 것이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여기 계신 미스터 리나, 관행스님이나, 보행스님이나, 강현수나, 김귀자님도 그때가 처음 “모를 뿐”을 경험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숭산스님이 그러셨을 때, “아 맞아! 나도 그렇게 느껴.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걸 느꼈어!” 부처님은 여기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 이 경을 읽으시고 믿음이 생기시면, 그건 아주 오랜 전부터 쌓여져 왔던 인연들에 의해서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은 셀 수 없이 많은 부처님을 말씀하셨습니다만, 그건 이렇게 뒤에 있는 수천 금불상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죠. 당신 스스로의 경험이 바로 부처라는 말씀입니다. 숭산스님이 이렇게 주장자를 딱 내려치셨을 때, 이게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부처라는 것이 우리의 모든 ‘경험’을 뜻합니다. “넌 누구냐? 오직 모를 뿐이다!” 어떤 사람은 그걸 한번만 듣고도 교감해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관심도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원…. 난 이거나 해봐야지.” 안녕히 가세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한 번만 들어도 딱 교감 해버립니다. “그래 모를 뿐!, 음…. 그래 난 몰라….” 아주 재미있지요. 이 가르침과 깊은 인연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계속 열심히 수행 하시면 다음 생애에도 또다시 이 가르침을 만나실 겁니다. 수보리는 “미래의 사람들이 이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물어보지만, 부처님께서는 “미래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말라(無記)”고 하신 겁니다. “왜 미래에 대해서 질문을 하느냐”는 것이죠. 만약 바로 이 순간을 이해한다면, 확실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뭔가가 있다고 느낄 수 있다면 언젠가는 분명히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뿐 임을 알 수 있다면 미래에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모두 이 순간, 다 똑같기 때문입니다. 어렵고 복잡하지 않습니다.

여기 6장의 이 뒤에 구절이 더욱 흥미롭습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조금이라도 집착이 있다면 진정한 보살이 아니다.” 진정한 보살은 “나” 라는 상이 없습니다. 우리 본래의 모습, 진정한 모습, 생각 이전의 모습은 “나”라는 상이 없습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 등 차별된 상이 없습니다. 모두 하나입니다.

이것은 물로도 비유할 수가 있는데요. 이 컵에 들어있는 물과 저 컵에 들어있는 물의 H₂O 본질이 다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이 물의 H₂O와 저 물의 H₂O 본질은 모두 똑같습니다. 모두 같은 H₂O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본성과 저의 본성 또한 똑같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누구든지 어떠한 상에 집착하면 진정한 보살이 아닌 것입니다.

자 6장의 가장 흥미로운 마지막 구절입니다. “이러한 뜻에서 여래가 늘 설하시기를 나의 법문은 뗏목의 비유와 같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버려야 하며, 그 아닌 것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문은 이와 같이 뗏목과 같습니다. 이 금강경이 바로 뗏목과 같은 것이죠. 여러분 보다 더 귀중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강을 건너는 뗏목에 불과한 것입니다. 과거에 한 선사님과 제자들이 한 겨울 혹한 추위 속에 있었는데요. 금강경을 태워서…. 우리는 금강경을 들 때 머리 위로 예를 표하라고, 땅 바닥에 놓지 말라하고, 엉덩이에 깔고 앉지 말라고 배웠습니다만, 이 선사님은 금강경을 찢어서 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한 제자는,

“선사님! 도대체 뭘 하시는 겁니까? 그건 금강경이잖아요! 왜 금강경을 찢으시는 겁니까? 미치신 거 아닙니까?” 라고 따지자,

“미친 짓일 수도 있지만, 또한 이제 더 이상 춥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라고 대답하셨답니다. 그러니깐 금강경은 뗏목과 같은 것입니다. 자동차 같은 것입니다. 본래 공한 본성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뿐입니다. 아시겠죠? 부처님이 버리라고 하신 것은 단지 이 종이로 만든 책뿐이 아니라, 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상에서 자유로워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금강경의 가르침입니다.

‘나’도 버리고, 이 가르침도 버리라는 것이죠. 그렇죠? 또한 ‘공’도 버리라는 것입니다. 수보리는 공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공’ 또한 버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모두 다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사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금강경은 단지 우리에게 이 가르침을 전달하는 뗏목과 같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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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한글 해석/해설: 7.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7.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 깨침과 설법(說法)이 없음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 如來有所說法耶? 須菩提言。 如我解佛所說義, 無有定法。 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亦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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