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불교/현각스님의 살아있는 금강경

금강경 한글 해석/해설: 31. 일합이상분(知見不生分) Part 2

by 윤해환 2023. 2. 4.
반응형

살아있는 금강경 : 31

「須菩提, 若人言, 『佛說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 須菩提 於意云何? 是人, 解我所說義不?」 「不也, 世尊。 是人, 不解如來所說義。 何以故, 世尊說,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 ﹐即非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 是名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 「須菩提,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於一切法, 應如是知, 如是見, 如是信解, 不生法相。須菩提, 所言法相者, 如來說即非法相, 是名法相。」

“수보리여! 어떤 사람이 『여래가 자아가 있다는 견해, 개아가 있다는 견해, 중생이 있다는 견해, 영혼이 있다는 견해를 설했다.』고 말한다면,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이 사람이 내가 설한 뜻을 알았다 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여래께서 설한 뜻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자아가 있다는 견해(我見), 개아가 있다는 견해(人見), 중생이 있다는 견해(衆生見), 영혼이 있다는 견해 (壽者見)가 자아가 있다는 견해, 개아가 있다는 견해, 중생이 있다는 견해, 영혼이 있다는 견해가 아니라고 설하셨으므로 자아가 있다는 견해, 개아가 있다는 견해, 중생이 있다는 견해, 영혼이 있다는 견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는  일체법에 대하여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믿고 이해하여 법이라는 관념(法相)을 내지 않아야 한다. 수보리여! 법이라는 관념은 법이라는 관념이 아니라고 여래는 설하였으므로 법이라는 관념이라 말한다.”

31. 일합이상분(知見不生分) : 내지 않아야 할 관념

여기 제 앞에 시계가 있죠. 저는 이게 ‘여기’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이게 어디에 있는 거죠? “저기요!” 저한테는 “여기”인데요. 여러분은 어디에 있다고 말한다고요? “저기요.” “아니에요! 여기라니깐요!” “아니에요. 저기에요!” “여기에요! 여기!” “저기예요, 저기!” 온 세상이 바로 이렇게 싸우는 것입니다. 하하하~ 온 세상이 말입니다. 여기와 저기라는 상대적인 개념 속에서 말이죠.

잘못된 생각입니다. 진리를 정말로 모르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여기’라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저기’지요?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바로 이렇게 생각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정말 단순하게 들리시겠지만, 모든 것은 다 생각[망상]입니다. 부처님께선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우주 또는 다른 그 어떤 것과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나’가 있지 않다고 말입니다. 부처님의 이 가르침은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인도의 전통 종교에서는 어떤 영혼은 귀족으로 태어나고 다시 귀족으로 윤회하면, 어떤 영혼은 천민으로 태어나 다시 죽어도 그 영혼은 천민으로 환생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족들은 그들은 선택받은 자로서 여기서 이렇게 살지만, 천민들은 이러한 잘못된 종교적 발상 때문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이 하나[영혼]을 만들면 여기와 저기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생각일 뿐입니다. 시간과 공간도 오직 생각일 뿐이고요. 아주 아주 분명하고 심플한 가르침입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은 결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그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낸 이름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나와 너, 진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구분들은 오직 임시로 지어져서 사용하는 방편인 것입니다. “여기요!” (누군가 대답한다) “저기요!” 대화하기 편리하도록 만들어진, 오직 생각이 만들어 낸 이름일 뿐입니다. 스님과 리허설도 안 했는데, 죽이 짝짝 맞네요.

그리고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아누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자는 일체의 법에 대해 마땅히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며, 이렇게 믿고 이해해 법상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수보리여! 법상이라는 것은 여래가 법상이 아니라고 하니, 그 이름이 법상이다.” 그러니깐 그 어떠한 것이라도 이름 붙여진 것은 그것이 오직 임시로 붙여진 이름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은 이름 자체도 녹여버리지만, 이것을 녹이려고 만들어 낸 법까지 모두 녹여버리는 것입니다. 그 어디에도 지문이 찾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존재성’을 완전히 녹여버리는 혁명적이지만 완벽히 정확한 가르침인 것입니다.

자, 그럼 무엇이 정견[바른 견해]이냐? 진정한 통찰은 무견(無見, No view)입니다. 이름을 붙이거나 묘사를 할 수 있는 그 어떠한 견해도 진정한 정견이 아닌 것입니다. 입을 열어 모사하거나, 이름 붙이거나 하는 바로 그 순간, “여기!”라고 지금 이름을 붙였지요? 바로 이런 것은 정견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여기’라고 이름 붙였으니깐요. 무견이 바로 정견입니다. 여기’라는 개념[견해]을 제가 한 번 녹여버릴까요? 지금 16시 19분이네요. 이해가 가세요? 정견은 아무 견해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 견해, 저기 견해, 불교적인 또는 기독교적 견해, 한국적 혹은 미국적인 견해, 남성 또는 여성의 견해, 과거 또는 미래의 견해, 종교적인 견해, 역사적인 견해, 이런 모든 견해를 다 쓰레기통에 버리십시오. 그리고 볼 때는 오직 볼뿐! 들을 때는 오직 듣고! 냄새 맡을 때는 오직 냄새를 맡을 뿐! 맛 볼맛볼 때는 맛볼 뿐입니다. 느낄 때는, 아~ 땀이 나네요~ 이것뿐입니다. 이 견해는, ‘견해’가 아닙니다. 재밌습니다. 금강경의 6장을 보면, 부처님은 뗏목을 버리라고 하시지요? 당신이 가르친 법까지 뗏목처럼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대신 이 가르침을 잘 사용해서 유심히 통찰하라고요. 단, 이렇게 해서 얻은 견해에도 집착하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자, 그럼 우리 금강경의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 볼까요?

https://yoonhaehwan.tistory.com/57

 

금강경 한글 해석/해설: 32.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Part 1

「須菩提, 若有人, 以滿無量阿僧祇世界七寶持用布施, 若有善男子, 善女人, 發菩薩心者, 持於此經, 乃至四句偈等, 受持讀誦, 為人演說, 其福勝彼。 云何為人演說, 不取於相, 如如不動。 何以故,

yoonhaehwan.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