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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윤동주 시집의 진짜 이름, 「병원」

by 윤해환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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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지의 제목. 빨간색 네모칸 안에 연필자국 쓰다 지운 '病院(병원)' 한자가 살짝 보인다.

얼마 전 윤동주에 관한 글을 찾아보다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글을 보게 되었다. 

“동주는 자선 시집을 만들어 졸업 기념으로 출판을 계획했다. ‘서시’까지 붙여서 친필로 쓴 원고를 손수 제본을 한 다음 그 한 부를 내게다 주면서 시집의 제목이 길어진 이유를 ‘서시’를 보이면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시집 이름을 ‘병원’으로 붙일까 했다면서 표지에 연필로 ‘병원’이라고 써넣어 주었다. 그 이유는 지금 세상은 온통 환자투성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리고 병원이란 앓는 사람을 고치는 곳이기 때문에 혹시 앓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느냐고 겸손하게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 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

여기서 정병욱은 내가 이전에도 포스팅한 바로 윤동주의 막역한 친구이다. 따라서 그의 증언은 참고할만하다. 위 글을 보고 '역시, 윤동주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학가로 태어난 비애

문학가는 세상을 바라보는데 조금 특이한 관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남들이 보는 대로만 본다면, 참신한 문학적인 아이디어를 얻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문학가를 생각하면 시대의 반역자, 혁명가, 혹은 세상을 만화경으로 본다는 비유가 떠오른다.

여러 서사를 가진 문학가들이 정말 많다. 근대 일본 문학가들 중에서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들이 참 많다. 교보문고 문학 코너에 항상 배치되어 있는 『인간실격』의 작가로 잘 알려진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1948). 그 역시 네 번의 자살 끝에 다마가와 상수로(玉川上水)에 투신해 숨졌다. 『설국』의 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 역시 의문의 가스 사고로 숨졌다. 이 가스 '사고'가 자살인지 사고사인지는 불분명하다. 그의 제자이자 『금각사』로 잘 알려진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는 스스로 배를 갈라 죽었다. 

물론 윤동주는 이처럼 '격정적'으로 삶을 끝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억울하다고만 해야겠다. 하지만 그런 죽음이 오히려 윤동주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만들었지 않았을지 생각해본다. 일제의 폭압이 조선을 지배하던 시절에 태어나, 그 특유의 여리고 인간애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본 윤동주는 자신이 금지옥엽처럼 여기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병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온통 환자 투성이인 세상

윤동주의 생몰연도는 1917년부터 1945년까지이다.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한 뒤 나라가 망했다. 1914년, 저 먼 구라파(歐羅巴)에서는 첫 번째 세계 대전이 일어났다. 그리고 1931년에는 만주 사변이 발생했고 1939년에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두 번째 세계 대전이 일어났다. 

이때 '불가침'이라던 인간의 목숨은 무가치해졌다. 모든 것은 숫자가 되었다. 개인은 말살되었고, 그 빈자리가 국가로 채워졌다. 특정한 이념, 특정한 인물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와 교조주의적인 행태가 지속되었다. 그러한 세태를 따르지 않으면 비국민(非國民)이 되고야 말았다.

혹시라도 도움이 된다면

온통 환자 투성이였다. 그래서 윤동주는 자신의 시집에 '병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뒤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지금 세상은 온통 환자투성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리고 병원이란 앓는 사람을 고치는 곳이기 때문에 혹시 앓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느냐

나는 바로 이 부분에서 윤동주 특유의 인간애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병원이다. 온갖 환자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나의 시를 통해서, 어떤 앓는 이는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윤동주의 시를 통해 위로받았는지는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나도 그렇고, 그의 시를 읽은 사람은 아마 다른 시인들의 화려한 비유나 은유가 아니라, 그저 적적하고 담담한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겠지. 

지금도 환자 투성이

윤동주가 떠난지 곧 80년이 다 돼 간다. 세계 대전이 끝난 해 역시 80년이 더 지나가는 시점이다. 그러나 우리 세계는 윤동주가 비유했듯, '환자 투성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정치적 혼란, 대립, 온갖 갈등, 분노, 증오, 미움이 다시금 시대의 전면에 나오기 시작했다. 경제 위기로 촉발된, 좌와 우를 가리지 않는 극단주의는 사람들을 피로하게 만들고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세상은 환자 투성이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모두 환자일지도 모르는 법 아니겠는지? 

하지만 윤동주가 도움을 줄 수는 있다. 그는 자신의 시가 혹시 앓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작품은 아직도 우리들의 서재에 꽂혀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위로를 건네준다. 그가 자신에게 건넨 '최초의 악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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