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환

명반 순례기: 핑크 플로이드, 『더 월(The Wall)』 해석 본문

🎵 음악/핑크 플로이드 (Pink Floyd)

명반 순례기: 핑크 플로이드, 『더 월(The Wall)』 해석

윤해환 2023. 1. 16. 03:13
반응형
『더 월』의 1979 오리지널 음반 표지.

소외 · 고립 · 광기

최근 음반 시장을 보면, 대부분의 음악 가사는 '사랑'과 관련되어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핑크 플로이드는 그런 음악을 잘 내지 않았다. 대신 한 인간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격리되고, 마침내 자신만의 벽을 쌓는다는, 다소 심오한 이야기를 가사로 채택했다. 또한 그들은 개인에게 내재되어 있는 '광기'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The Wall)』은 핑크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1979년의 록 오페라이다. 그들의 11번째 앨범이기도 하고, 가장 높게 평가 받는 앨범 중 하나이기도 하다. 『더 월(The Wall)』에서 핑크 플로이드는 말 그대로 '벽'을 쌓는 핑크를 보여주면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통의 단절과 부재, 그리고 그로 인해 촉발된 외로움과 고독을 표현한다.

'록 오페라'라는 서사

우선 『더 월(The Wall)』을 '록 오페라'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록 오페라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록 오페라는 말 그대로 록 음악으로 만든 오페라이다. 이 장르가 다른 장르와 갖는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특정한 '서사'가 있다는 것이다. 앨범 하나가 하나의 주제로 통일되어 있다. 따라서 록 오페라 앨범을 콘셉트 앨범의 한 범주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핑크의 서사는?

SIDE 1 SIDE 2
In the Flesh? Goodbye Blue Sky
The Thin Ice Empty Spaces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1) Young Lust
The Happiest Days of Our Lives One of My Turns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 Don't Leave Me Now
Mother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3
  Goodbye Cruel World
SIDE 3 SIDE 4
Hey You The Show Must Go On
Is There Anybody Out There? In the Flesh
Nobody Home Run Like Hell
Vera Waiting for the Worms
Bring the Boys Back Home Stop
Comfortably Numb The Trial
  Outside the Wall (完)

우선 윗 표에 곡의 제목을 기록해두었다. Side 1에서 Side 4로 가는 순서로 읽으면 된다. 이를 참고하면서 하술할 서사에 집중해보고, 음악을 들어보자.

Side 1

  • 핑크는 우울한 록 스타이다. 그는 콘서트에서 팬들이 입장하는 모습을 회상해본다. 회상에서 핑크는 자신의 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In the Flesh?)
  • 핑크의 어머니는 그를 홀로 키운다. (The Thin Ice)
  •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핑크는 벽을 쌓기 시작한다.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1)
  • 핑크는 자라면서 학교에서 학대를 일삼는 선생들에게 고통받는다. (The Happiest Days of Our Lives)
  • 그리고 그러한 기억들 역시 벽을 쌓는데 일조하게 된다.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
  • 성인이 되자, 핑크는 자신을 과잉보호한 어머니를 떠올린다. (Mother)

Side 2

  •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 때 자신의 모습을 회상한다. 이때의 사회 분위기 역시 핑크의 벽 쌓기에 일조한다. (Goodbye Blue Sky)
  • 핑크는 결혼하지만, 결혼 이후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더 많은 '벽돌'들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핑크는 자신의 '벽'을 완성토록 준비한다. (Empty spaces)
  • 미국에서 순회 공연을 하면서, 핑크는 심심해서 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집에 전화하자, 핑크는 그의 아내가 바람을 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Young Lust)
  • 핑크는 여자를 자신의 호텔 방으로 데려오지만, 혼란한 마음 속에서 분노로 물건을 부수고, 여자는 무서워서 도망친다. (One of My Turns)
  • 핑크는 우울해있고, 아내를 생각하면서 방에 갖혀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Don't Leave Me Now)
  • 아내의 불륜은 또 다시 핑크에게 벽돌을 쌓게하고 인간과의 교류를 거부하게 한다.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3)
  • 핑크는 이제 자신을 완전히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시킨다. (Goodbye Cruel World)

Side 3

  • 핑크는 벽을 완성한 뒤, 자신이 한 일에 의문을 품지만, 이미 벽은 너무 높아 누구도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Hey You)
  • 그 뒤 핑크는 자신을 호텔 방에 가두고, 다만 누군가 밖에 있냐고 나지막히 외친다. (Is There Anybody Out There?)
  • 이제 완전히 홀로 남겨진 핑크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자신의 소유물을 살펴보고, 집에 전화도 해보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Nobody Home)
  • 또한 자신의 아버지와도 연결을 시도해보지만, 그저 외로움만 남을 뿐이다. (Vera)
  • 핑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람들이 군인들을 집에 돌아오라고 외치는 모습을 회고한다. (Bring the Boys Back Home)
  • 다시 현실로 돌아와, 핑크의 매니저는 그가 의식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의사는 그에게 공연을 준비할 수 있도록 약물을 주입해준다. (Comfortably Numb)

Side 4

  • 약물의 주입은 핑크에게 환상을 일으킨다. 다만 이것이 현실에서의 다른 자아인지, 환상인지는 논란이 있다. (The Show Must Go On)
  • 거기서 그는 자신이 파시스트 독재자라고 생각하고, 그의 콘서트는 네오나치 집회라고 상상한다. (In the Flesh)
  • 그는 계속 자신을 독재자라고 생각하면서 인종적 소수자를 공격한다. 어렸을 때 받았던 잘못된 교육이 한 개인을 파시스트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Run Like Hell)
  • 그리고 런던 근교에서 자신의 광기를 보여주며 집회를 연다. (Waiting for the Worms)
  • 갑자기 핑크의 환상은 맘추게 되고, 핑크는 모든 것 역시 그와 함께 멈추기를 빈다. (Stop)
  • 핑크는 죄책감에 쌓여 재판에 참석하게 되고, 거기서 판사는 '벽을 깨부수라'라는 판결을 내리게 된다. (The Trial)
  • 그리고 핑크는 벽 밖으로 나가게 된다. (Outside the Wall)

영겁회귀 (Ewige Wiederkunft)

이 앨범에서 가장 특기할만 한 부분은 바로 끝과 처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Outside the Wall」의 마지막 부분 "Isn't this where..." 의 부분이 노래의 첫 부분 「In the Flesh?」의 "...we came in?" 과 연결된다. 이것은 결국 로지 워터스의 주제인 영원한 순환을 암시하는 것과 동시에 무너져내린 벽이 다시 쌓아지는 과정을 암시한다. 이는 결국 앨범의 핵심인 '존재의 위기(existential crisis)'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반응형
Comments